1. 이방인 중 믿음을 가진 자들
로마 백부장은 일반적으로 약 100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중간 장교였으며, 식민지였던 유대 땅에서도 로마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이름 없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특히 예수께 자신의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했던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말씀만 하옵소서”라는 고백을 통해 예수님의 권위를 전적으로 신뢰함을 나타냈습니다(마 8:8). 이에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하시며, 그가 이방인임에도 참된 믿음을 소유한 자로 인정하셨습니다. 이는 유대인 중심의 종교 질서 안에서 매우 급진적인 선포였으며, 장차 복음이 이방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예표가 되었습니다.
2. 십자가 아래 선 백부장의 고백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이를 지켜보던 로마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죽음과 그에 따르는 초자연적 현상—흑암, 지진, 성소 휘장이 찢어짐—을 목격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마 27:54).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탄식 이상의 신앙 고백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를 처형하는 입장이었던 이방인 군인의 입에서 나온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선언 중 하나이며, 복음이 민족과 종교적 장벽을 넘어 보편적인 구원의 메시지임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가운데,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를 인정하는 역설은 복음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믿음은 혈통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됨—을 극적으로 부각시킵니다.
3. 고넬료와 이방 선교의 시발점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더욱 직접적인 복음의 확장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백부장이 등장합니다. 바로 고넬료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부대에 속한 백부장이었으며,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소개됩니다. 그는 환상을 통해 베드로를 초청하게 되고,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이방인 가정에 복음을 전한다는 파격적인 사건은 초대교회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었지만,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하면서 이는 하나님의 뜻임이 명백해졌습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의 신학적 전환점이자, 복음이 이방 세계로 본격적으로 나아가는 분수령이 되었고, 이후 바울의 이방 선교에까지 이어지는 선교적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고넬료의 믿음과 순종은 복음이 민족과 종교의 경계를 넘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4. 신앙의 모범이 된 이방 군인들
로마 백부장들은 신약성경에서 이름 없이 지나가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등장과 믿음의 반응은 결코 주변적이지 않습니다. 예수의 권위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이방 선교의 첫 열매가 되는 응답 등은 모두 이방인의 신앙이 유대 전통을 뛰어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세운 문화적, 인종적, 종교적 장벽을 초월하셔서 믿는 자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백부장들은 특권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 자들로서, 복음의 보편성과 하나님의 포용성을 증거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의 삶과 고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증언이 되어,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복음의 문이 열려 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